티스토리 뷰

미술관에서 안내 책자를 펼칠 때마다 느끼던 이상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다빈치, 고흐, 피카소. 이름들이 전부 남자였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17세기에, 여자가, 이걸 그렸다는 사실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늘은 미술사를 실제로 바꿔놓은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바로크에서 아르데코까지, 시대를 뚫은 이름들
제가 처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접한 건 미술관 도슨트 해설을 통해서였는데, 그 자리에서 도슨트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신화 묘사가 아닙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다〉는 바로크(Baroque) 양식 — 강렬한 명암 대비와 극적인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17세기 미술 사조 — 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당대 남성 화가들과 다른 시선을 담고 있었습니다. 같은 주제를 카라바조도 그렸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호하고 강합니다. 그 차이가 우연이 아니라는 걸 그녀의 삶을 알고 나면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한 세기를 건너 18세기 프랑스로 오면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이 있습니다. 그녀는 귀족 초상화의 관행 속에서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순한 왕비가 아닌 '어머니'로 그려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아이들〉은 공식 초상화이면서도 온기가 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의 도판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왕실 공식 초상화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게.
20세기로 넘어오면 타마라 드 렘피카가 등장합니다. 아르데코(Art Deco) — 1920~30년대를 풍미한 기하학적이고 도시적인 장식 양식 — 를 회화로 완성한 화가입니다.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은 자동차 핸들을 잡은 여성의 모습을 담았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도발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소유한다"는 메시지가 그림 전체에서 느껴집니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바로크 양식, 강인한 여성 서사
-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 18세기 왕실 초상화, 인간적 온기
- 타마라 드 렘피카 — 아르데코 양식, 도시적 자의식
인상주의가 여성의 일상을 발견한 방식
인상주의(Impressionism)라고 하면 대개 모네나 르누아르를 떠올리지만, 제가 실제로 인상주의 전시를 몇 번 다녀보고 나서 느낀 건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커샛이 없었다면 이 사조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라는 점입니다. 인상주의란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해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19세기 후반의 미술 운동으로, 아카데미 미술의 엄격한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기묘한 친밀감이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붓 터치 몇 개로 표현됐는데, 그게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그룹 전시에 꾸준히 참여한 몇 안 되는 화가였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의 작품이 마네보다 훨씬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 출신의 메리 커샛은 파리에서 활동하며 일상 속 여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목욕시키기〉는 어머니가 아이를 씻기는 장면인데, 당시 대형 역사화 위주의 화단에서 이런 '작은' 순간을 주제로 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커샛의 작품을 중요한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분류하고 있을 만큼, 그녀의 예술적 위치는 오늘날 확고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와 조지아 오키프, 고통과 대지로 말하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너무 비극적인 서사에 피로감을 느끼는 쪽이었습니다. 교통사고, 남편의 불륜, 유산. 고통의 목록이 너무 길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그녀의 그림 앞에 서보면 생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신화와 멕시코 민속 이미지로 변환해냈는데, 이건 단순한 자기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 언어를 만든 겁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 — 꿈과 무의식을 시각화하는 예술 운동 — 의 대표 주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칼로 본인은 "나는 꿈을 그린 게 아니라 나의 현실을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두 명의 프리다〉는 두 자아가 서로 다른 심장으로 연결된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 제 경험상 이 그림 앞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는 순간 이해가 됩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맞섰습니다. 뉴멕시코 사막으로 들어가 꽃과 동물 두개골을 거대하게 확대해서 그렸습니다. 〈검은 아이리스〉를 처음 봤을 때 꽃인지 추상화인지 구분이 안 됐는데, 그게 오키프의 의도였을 겁니다. 경계를 지우는 것. 출처: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생애 후반 거의 20년을 뉴멕시코 사막에서 홀로 작업하며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꾼 세 명의 이름
야요이 쿠사마의 〈무한 거울 방〉 전시에 직접 들어가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시각적 황홀감이 아니었습니다. 물방울무늬가 무한히 반사되는 공간 안에서 내가 어디서 끝나고 세계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 수 없어지는 감각 — 쿠사마가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다는 환각 증세를 예술로 전환한 결과가 바로 이겁니다.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 — 심리학 용어로 특정 행위나 패턴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증상 — 을 쿠사마는 캔버스와 설치 공간으로 끌어냈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전 세계 관람객을 해방감으로 이끌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설치미술(Installation art) —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구성하는 장르 — 의 선구자로,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Maman)〉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높이 9미터에 달하는 이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보호하는 동시에 두려운 존재. 제가 처음 이 작품의 의미를 알았을 때 한참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거미가 왜 어머니인지를 이해하는 순간, 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신디 셔먼은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변신하며 정체성과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해체했습니다. 〈무제 영화 스틸〉 시리즈는 B급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흉내 내는 셔먼 자신의 사진인데, 여기서 묻는 건 "이게 진짜 셔먼인가"가 아니라 "애초에 영화가 보여주던 여성은 진짜였나"입니다. 사진이 현대미술의 핵심 장르로 자리 잡는 데 셔먼의 역할은 결정적이었습니다.
- 야요이 쿠사마 — 물방울무늬와 반복 패턴, 〈무한 거울 방〉
- 루이즈 부르주아 — 설치미술, 〈마망〉으로 모성과 심리를 조각으로 표현
- 신디 셔먼 — 사진 예술, 미디어 속 여성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업
자주 묻는 질문
Q. 여성 화가들이 역사에서 잘 안 알려진 이유가 뭔가요?
A. 과거에는 여성이 정식 미술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웠고, 인체 데생 수업 참여조차 제한됐습니다. 역사화나 종교화 같은 '주류 장르'의 작품 의뢰도 대부분 남성에게 돌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작품 수 자체가 적어지고, 미술사 서술에서도 뒤로 밀렸습니다. 지금은 이 공백을 메우는 연구와 전시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Q. 프리다 칼로가 초현실주의 화가인가요?
A.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 그룹과 교류했고 그쪽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본인은 그 호칭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그렸다"는 말을 남길 만큼, 칼로의 작품은 자전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초현실주의라기보다는 독자적인 장르로 보는 시각이 지금은 더 일반적입니다.
Q. 야요이 쿠사마 전시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쿠사마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순회 전시 형태로 꾸준히 열립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대규모 전시가 열렸고, 〈무한 거울 방〉 시리즈는 특히 예약이 빨리 마감됩니다. 일본 도쿄에는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이 있어서 상설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Q. 미술관에서 여성 화가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방식이 좋은가요?
A. 제 경험상 그림 자체보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 배경을 먼저 조금 알고 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남성 화가의 작품과 나란히 비교해보면, 같은 주제가 얼마나 다르게 해석됐는지가 보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여성 화가들이 미술사에 더한 '새로운 눈'입니다.
결론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많은 공백들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부터 신디 셔먼까지, 오늘 이야기한 열 명의 화가들은 그 공백을 자신의 힘으로 채워나간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매번 새롭게 느끼는 건, 이들이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여성이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을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다음번에 미술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안내 책자에서 여성 화가 이름을 먼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분명 예상보다 많이 있고, 예상보다 훨씬 강렬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