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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미술 (고야, 게르니카, 다다이즘)
전쟁과 미술 (고야, 게르니카, 다다이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복제본 앞에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흑백으로만 가득한 그 캔버스를 보면서 처음엔 "왜 이렇게 난잡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다 보니 울부짖는 말, 아이를 안고 쓰러진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고,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전쟁이 미술을 어떻게 바꿨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제 경험과 함께 풀어봤습니다.

고야가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다

사실 제가 처음 미술사 책을 펼쳤을 때, 전쟁 그림이라고 하면 갑옷 입은 기사나 말 위에 올라탄 장군 초상화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벽화부터 로마 제국의 부조(浮彫), 중세 유럽의 채색 필사본까지 전쟁은 한결같이 승리와 권력의 이미지로 소비됐습니다. 여기서 부조란 돌이나 금속 면에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기는 조각 기법으로, 왕이 적을 짓밟는 장면을 담아 권위를 시각화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Perspective)이 발전하면서 전장 묘사는 훨씬 사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원근법이란 3차원 공간을 2차원 화면 위에서 원거리일수록 작게 그리는 기법으로, 관람자가 실제 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갑옷의 광택, 말의 힘줄, 병사들의 일그러진 표정까지 묘사됐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전히 영웅뿐이었습니다.

그 공식을 정면으로 깬 사람이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입니다. 18세기 말 스페인을 휩쓴 나폴레옹 전쟁을 직접 목격한 그는 〈1808년 5월 3일〉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영웅에서 희생자로 돌렸습니다. 총구를 들이민 군인들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빛을 받는 것은 흰 셔츠를 입은 채 두 팔을 벌린 무명의 시민뿐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도 선택 하나가 관람자에게 주는 충격이 어떤 설명보다 강렬합니다.

요약: 고야는 승리의 기록이었던 전쟁화를 희생자의 시선으로 완전히 전환한 최초의 화가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낳은 다다이즘, 예술 자체를 부숴버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은 진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당시 상황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단순히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전쟁이 당시 기준 '문명국'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술가들의 반응이 "예술이 도대체 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진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 혼돈 속에서 탄생한 것이 다다이즘(Dadaism)입니다. 다다이즘이란 기존 예술의 모든 규칙과 미적 기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우연과 풍자, 비논리를 통해 전쟁과 사회를 비판한 전위 예술 운동을 말합니다. 이름 자체도 무의미합니다. 사전을 펼쳐 아무 단어나 집어낸 것이 '다다(Dada)'였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다이스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예술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면, 그 예술부터 부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마르셀 뒤샹이 기성 변기에 서명만 해서 〈샘〉이라는 작품으로 제출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황당하다고 느꼈는데, 배경을 알고 나니 그게 얼마나 치밀한 저항이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 다다이즘은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되어 독일, 프랑스, 미국으로 번졌습니다.
  • 우연성·풍자·콜라주를 주요 기법으로 사용해 전쟁과 부르주아 문화를 동시에 겨냥했습니다.
  • 후대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개념미술 모두 다다이즘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성장했습니다.
요약: 다다이즘은 전쟁이 촉발한 허무와 분노가 예술 언어 자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폭발한 운동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흑백이 오히려 더 무섭다

전쟁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게르니카를 빼는 건 불가능합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히틀러의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했고, 피카소는 이 소식을 신문으로 접한 지 며칠 만에 붓을 들었습니다. 완성된 작품은 가로 7.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유화인데, 그 안에는 단 한 가지 색도 없습니다. 오직 흑과 백, 그리고 회색뿐입니다.

제가 직접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출처: Museo Reina Sofía 공식 사이트)에서 실물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압도감'이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색을 없앴기 때문에 거꾸로 뉴스 사진처럼 다가왔고, 그게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큐비즘(Cubism)이라는 기법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큐비즘이란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본 시점을 한 화면에 겹쳐 표현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정면과 측면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덕분에 말의 울부짖음, 어머니의 절규, 쓰러진 병사의 몸이 파편처럼 뒤엉키며 전쟁의 혼란 자체를 시각화합니다. 게르니카는 오늘날에도 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 앞에 태피스트리 복제본이 걸려 있을 만큼 반전(反戰)의 상징으로 공인받고 있습니다(출처: United Nations 공식 사이트).

요약: 게르니카는 큐비즘과 흑백이라는 선택이 맞물려 전쟁의 참혹함을 어떤 컬러 사진보다 강렬하게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이 통째로 이동하다

2차 세계대전은 미술 지도 자체를 바꿨습니다. 유럽에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같은 예술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이 파리를 대신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 흐름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 유럽의 실험적 사고가 미국 땅에 이식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게 훨씬 정확합니다.

이 시기에 꽃핀 것이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입니다. 추상표현주의란 전쟁 이후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실존적 공허를 구체적 형상 없이 색과 붓질만으로 쏟아내는 미술 사조를 말합니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물감을 흘려 부은 것, 마크 로스코가 커다란 색면(色面)만으로 관람자를 압도한 것이 모두 이 흐름 안에 있습니다.

전쟁 이후 예술가들이 화려한 풍경화나 귀족 초상화 대신 인간의 상처와 불안을 담기 시작했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봅니다. 삶이 뒤집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붙잡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솔직한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날 현대미술이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진다면, 그 출발점에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요약: 2차 세계대전은 현대미술의 지리적·사상적 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기며 추상표현주의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 프라도 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고화질 디지털 이미지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방문 전 미리 보고 가시면 실물 앞에서 느끼는 감동이 훨씬 커집니다.

 

Q. 게르니카가 흑백인 이유가 따로 있나요?

A. 피카소가 직접 밝힌 단일한 이유는 없지만, 연구자들은 당시 신문 사진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색이 없는 화면이 전쟁 보도 사진을 연상시켜 오히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제 경험상 실제로 실물 앞에 서면 그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강렬합니다.

 

Q.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다이즘이 기존 예술의 파괴 자체를 목표로 했다면, 초현실주의는 그 파편 위에서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새로운 예술 언어로 구축하려 했습니다. 다다이즘이 "전부 부숴라"라면 초현실주의는 "부순 자리에 무의식을 심자"에 가깝습니다.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의 대표 주자입니다.

 

Q. 전쟁 미술을 미술관에서 볼 때 어떤 점을 먼저 보면 좋을까요?

A. 저는 그림을 보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먼저 물어봅니다. "화가가 누구의 편에서 이 장면을 그렸는가?" 승자 편에서 그린 그림과 희생자 편에서 그린 그림은 구도와 빛 처리, 인물 배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기준 하나만 들고 가도 감상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결론

전쟁은 미술에서 주인공을 바꿨습니다. 왕과 장군에서 이름 없는 시민으로, 영광의 기록에서 인간의 상처를 담은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 그 전환점을 열었고, 다다이즘이 예술의 개념 자체를 흔들었으며, 게르니카가 그 모든 고통을 하나의 화면에 집약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색과 형태로 쏟아냈습니다.

다음에 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 앞에 서게 된다면, 작품 해설보다 잠깐 멍하니 있어 보시길 권합니다. 화가가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가 아니라, 제 안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부터 먼저 느끼는 것이 좋습니다. 그 불편함이나 먹먹함이 바로 그림이 의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참고: Museo Reina Sofía 공식 사이트 / United Nations 공식 사이트